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레 공산당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칠레 민주당 (1887~1941)에 활동했던 '루이스 에밀리오 레카바렌'이 나와서 만든 정당이다. 창당 당시에는 [[러시아 혁명]]으로 인해서 공산주의 사상이 전 세계로 퍼지기 전이라는 점에서 '''사회주의 노동자당 (Partido Obrero Socialista)'''라는 당명으로 쓰였다. 그러다가 1922년 1월 2일부로 현재 당명으로 변경했다. 또, 1920년대에는 [[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]] 대통령에 의해 불법정당이 되었다가 1930년대 들어서서 [[칠레 사회당]], [[칠레 급진당]]과의 [[인민전선]]을 결성해서 연대를 확대해 나간다. 인민전선 이후에는 당명이 '칠레 민주동맹'으로 변경되었지만, 1948년에 다시 불법화되었다가 1958년에야 다시 합법화되었다. 합법화한 것도 [[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]] 대통령이었다. [[1960년대]]에도 급진당, 사회당과 연대하다가 [[1969년]]에 [[인민연합(칠레)|인민연합]]을 결성했고, [[1970년]] 대선에서 [[살바도르 아옌데]]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. 1973년 [[아우구스토 피노체트]]의 쿠데타로 인해 인민연합 소속 다른 정당들과 함께 불법이 되었고, [[피노체트]] 정권은 수천 명의 공산당원과 지지자들을 불법처형하는 등 탄압을 가속화했다. 1990년에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다시 합법정당이 되었다. 민주화 이후에는 ([[마르크스주의]]를 포기한) 사회당과 급진당과 결별했으며, 군소정당들과 정당연합을 구성하면서 대선에서는 [[중도좌파]]가 아닌 [[좌파]] 정당들을 꾸준히 지지해왔다. 30년 동안 기존정당들의 실망감들이 매우 커지자 [[2019년 칠레 반정부 시위]]로 인해 만들어진 제헌의회와 함께 힙입어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다니엘 하두에 (Daniel Jadue) 후보가 '''지지율 1위'''를 차지하는 등 공산당 내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었지만, 좌파 단일후보 예비선거에서 [[가브리엘 보리치]] 후보에게 39.53 vs 60.43으로 패배해[*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우파 후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밀리는 경향이 관찰돼서 그런 듯 하다. 보리치는 꽤 여유롭게 이기고 있다.] 보리치를 지지했으며, 1990년생 여성인 공산당 소속 산티아고 시장 이라시 하슬러 등이 보리치의 선거운동을 도왔다. 보리치는 결선투표에서 과반 넘게 득표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